모눈종이 회사명 탄생배경
모눈종이를 창안한 모눈지기는 전라남도 고흥군 소록도 인근에서 태어나서 각자의 고향에서 쫓겨나 소록도로 몰려든 나환자들이 자립 터전의 땅을 갖고 싶다며 우리동네 갯벌을 막아 농토로 만드는 오마 간척사업 하는 것을 국민학교 때(1964년) 보고 자랐습니다.
결국은 군사정부 정치인들이 개입하여 간척사업 중인 나환자들을 몰아내고 간척지를 민간인 부락인 우리동네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소록도 나환자들의 삶과 역사를 기록한 유명한 소설의 한 대목에 나오는 실제 동네 태생입니다.
제가 이 자리를 빌어 드리고 싶은 말씀은 모눈종이 의미와 태생배경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나환자들로부터 뺏은 간척지는 그 후 새우양식장으로 사용하다 20년쯤(80년 초) 지나 간수가 점점 빠져 풀이 한두 포기 나올 기미를 보이자 동네의 살만한 사람들은 땅을 거들도 보지 않고 김 양식이며 고기잡이로 먹고사는 사이 어선 하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간척지에 여기까지 내땅이라며 금을 긋고 다닙니다.
배가 없어 고기도 제대로 못 잡는 어촌의 가난한 어부들은 그렇게 언젠가는 나락을 심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간수가 푹푹 올라와 풀 한 포기 나지 않아 아무도 쳐다보지 않은 땅을 여기까지 자기 땅이라며 마치 모눈종이처럼 여기저기 칸을 긋고 다닌 것을 목도했습니다.
그로부터 또 세월이 흘러 90년도가 되자 정부에서 간척치 한가운데 농수를 저장한 거대한 저수지를 만들고 본격적으로 벼농사를 짓게 되자 수십년을 썩었던 갯벌의 부산물들이 거름이 되어 아주 질좋은 쌀이 생산 되기 시작합니다.
먹고살 만한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않던 땅에 모눈종이처럼 자기 땅이라고 금을 긋고 다니던 셋방살이 머슴살이하던 분들이 수천평의 논을 갖게 되어 인생 역전이 되면서 지금은 남부럽지 않게 살고 계십니다.
광활한 인터넷에도 누군가가 간척지를 개간하여 인터넷에 문외한 우리 모두가 고흥땅의 오마 간척지처럼 금을 긋고 다니면 내 재산이 되는 그런 꿈이 인터넷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일까..?
사업을 해서 재산을 축적하고 부자가 되는 것이 모든 사업가들의 꿈이고 이상이지만 논밭 수백평만 있어도 천석지기 부자로 사는 농경사회에서 끝이 보이지 않은 광활한 간척지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세상 누구든 그것을 혼자 다 차지해 농사를 짓겠다 보다 모두가 나누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2002년에 현물광고를 착안한 저는 시장의 범위와 사업성 크기에 놀라 이것은 혼자 지을 농사가 아니다 모두가 먹고 살만한 거대한 먹거리를 어떻게 나눌까가 항시 제 머릿속의 숙제였고 어려서 목도했던 간척지의 금긋기가 마치 모눈종이처럼 다가와 수많은 모눈으로 쪼개어 모두에게 나누는 상상에 2008년경에 로고를 만들고 회사명을 모눈종이라 명명하게 된 것입니다.
광고비를 돈이 아닌 상품으로 결제하는 힌트조차 조상들에게 얻었고 광고회사란 광고를 봐줄 회원이 많아야 목적을 달성하기에 글로벌 시장을 정복하려면 국민 한명 한명이 저에게는 회원이기 전에 파트너로 보였고 파트너는 당연히 수익을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광고수익을 모눈종이 모눈처럼 잘게 쪼개어 모든 국민께 나누고자 모눈종이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모눈지기 배상 -